수기는 흐름을 의미합니다. 흐름이란 고정돼 있지 않고 바뀐다는 의미입니다. 공간적으로는 이동이 잦은 것을 의미하고, 인간 관계에서는 편력을 의미합니다. 

수성인이 지닌 편력의 극단은 아마도 내가 나를 떠나 또 다른 내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화차(변영주, 2012)에서는 한 여인이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느날 아내가 행방불명이 되어 찾아 헤매는데, 알고 보니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아내는 이미 죽은 사람의 신분이고, 진짜 아내에 대해 이름도 나이도 아무것도 모른다면 얼마나 충격적일까? 수소문 끝에 알아낸 아내는 사람을 죽이고 그 사람의 신분으로 살아 왔음이 밝혀집니다. 이 엽기적인 스토리는 원작이 일본 추리 소설이고 1990년대 일본의 거품붕괴 시절 부채때문에 자기의 인생을 버리고 타인의 인생을 훔칠 수 밖에 없던 경제 시스템을 비판한 것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며 산다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사는 것입니다. 원래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은 상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물이 얼음이 되거나 수증기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수기의 극단적인 변화의 일면입니다.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은 이 영화에서 처럼 엽기적인 사건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비근한 예로 이해관계가 바뀌면 사람은 돌변해 버리고,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돼 버립니다. 이렇게 돌변하는 순간, 둘 중  어느 쪽이 진실인지 의심됩니다. 그 물음에는 답이 없습니다. 관점이 바뀌면서 맥락이 바뀌어 버리고, 모든 진리값도 바뀌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기가 가진 유연한 사고의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합니다.